이모들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된다.
'어떤 결혼을 해야하는가?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는가?'가 그 주제.
이모들은 강조한다.
"무.난.한 사람을 만나야 해. 그리고 모든 조건이 너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야 해."
무.난.한 사람? 나보다 모든 조건이 나은 사람?
이야기를 하다보면 꽤 속물적인 이야기들이 이어지기 마련이다.
물론 이해한다. 안 중요할 수 없지.
그리고 조카의 일이니 더더욱 속물적인 이야기를 드러내놓고 할 수 있겠지.
근데 난.
이런 대화를 하다보면
이모들이 행복한 삶의 조건이 아니라 최소한 불행하지는 않을 수 있는 삶의 조건(그것도 남이 보기에)을 열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.
커플 매칭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의 프로그램에
집안,학력,학벌,직업,소득 등의 조건을 등록하면 DB에 등록되어 있는 회원 중
입력한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이 검색되어 출력된다고 하지.
이모들이 말하는 조건을 커플 매칭 프로그램에 입력하면
몇 명의 사람들이 검색되어 나올까?
하. 셀 수는 있을까? 너무 많은거 아냐? ㅎ
그리고 그들을 만나면 난 정말 행복해져?
난 단 하나의 사람.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 사람을 찾고 싶다.
최소한 불행하지는 않을 삶이 아니라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단 확신이 드는 삶을 선택하고 싶다. 고난 앞에 서로 두 손 맞잡고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고난이 대수일까?
함께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다거나, 깊은 대화가 가능하다거나,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다는 등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조건은 이모들의 이야기에 잘 노출되지 않는다.
난 그게 답답하다.
이모들이 눈에 보이는 조건이 아니라
눈에 보이지 않는 조건을 살피는 능력을 알려주면 좋을텐데.
원래 정말 중요한 건 눈에 안보이기 마련이니까 말이다.
물론 결혼을 경험한 이모들이 말하는 속물적인 조건이 어떻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?
먹고 사는 현실의 문제인데. 하지만 속물적인 조건보다 우선되는 조건이 있음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.
이런 나에게 이모는 한 마디 한다.
"늙은 쥐 말 들어서 손해 볼게 있는 줄 아니?"
난 이모에게 말한다.
"이모가 말하는 늙은 쥐말야. 행복한 삶을 살아본 쥐야?"
답 없는 이야기.
그냥 나를 믿어주시길
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