태터데스크 관리자

도움말
닫기
적용하기   첫페이지 만들기

태터데스크 메시지

저장하였습니다.

"우리는 자기 내부의 소리만 빼고 그 밖의 곳에서 들려오는 말에는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."
- 파커 파머 Parker J. Palmer
 
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

메일을 확인하다가 눈에 들어온 한 줄의 글 귀.
 
내가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건. 고등학교 때 부터?
 
엄마가 강요해 읽은 명작전집 이런거 말고 책이 읽고 싶어 서점에 내 발로 찾아 들어가
 
읽고 싶은 책을 직접 내 손으로 골라 나와 읽기 시작한게 고등학교 재학 무렵이었던 것 같다.
 
이후로 지금까지 한 10년쯤?
 
매월 적게는 3권 많게는 7권 정도 읽고 있다.
 
주로 내가 즐겨 본 책은 자기계발서.
 
아마도 나를 바꾸고 싶은, 더 나은 내 모습로 발전하고 싶은 욕망이 자기계발서를 탐독하도록 한 듯.
 
자기계발서를 탐독할 땐 더 멋진 내 모습을 상상하고 기대하며 무척이나 행복했던 듯 하다.
 
나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작가의 삶을 들여다 보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웠다.
 
나도 그런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에 부풀기도 했다.
 
특히 성공한 여성이 쓴 책을 많이 읽었는데. 책에 푹 빠져 잠도 미루었던 기억도 난다.
 
그 땐 내가 성공에 목마른 아이라고 생각했다. 꼭 세상적인 성공을 이루어야(성공 스토리를
책으로 엮으면 사람들이 그 책을 돈 주고 사 볼만큼) 행복할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살 던 시

기였던 것 같다.
 
그래서 참 일찍부터 진로를 정하고 꿈을 꾸고 그 길에 몰입했다.
 
10년이 지난 지금.
 
10년전 내가 나를 바꾸고 싶어 자기계발서를 뒤적였던 건 나 스스로 행복하지 않은 상태였

기 때문에 내가 가진 모습 그대로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.
 
지금 내가 가진 모습 이대로 누군가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고 믿었던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.
 
굉장히 소심한 성격이지만 불같은 열정을 마음 깊숙이 품고 있던 사춘기 여자아이는 마음의
 
열정을 뒷받침 해줄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한 스스로의 모습이 불만스럽기도

했던 것 같다.
 
그래서 나 아닌 더 멋진 모습을 그리고 꿈꾸었던 건 아닐까 싶다.
 
10년쯤 지나고 보니 아무리 뚱땅 거리며 나를 뜯어 고치려 해도 본래의 내 모습이 뜯어

고쳐지기 보다는 내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악세사리가 덕지덕지 도배되고 있는 느낌.
 
정말 멋진 모습이 되고 싶어, 멋있어 보이는 사람들의 특징들을 내 모습에 덧입히다 보니
 
이건 나도 아니고 닮고 싶은 그 사람도 아닌 그렇다고 멋있지도 않은 모습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.
 
누군가를 닮아가려 하기 보다는 가장 나다운 모습을 찾기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 가장 멋지게,
 
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다.
 
하나님이 지어주신 모습 그대로 질 그릇이라면 질 그릇으로, 금 그릇이라면 금 그릇으로
 
쓰임받고, 주어진 것 안에서 충분히 누리는 것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임을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다.
 
그래서 내 안에서 들려오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해본다.
 
그리고 잠시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노력해본다.
 
가장 나 다운,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찾기 위해서.

Posted by 최우정 Trackback 0 : Comment 0

이모들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된다.

'어떤 결혼을 해야하는가?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는가?'가 그 주제.

이모들은 강조한다.

"무.난.한 사람을 만나야 해. 그리고 모든 조건이 너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야 해."


무.난.한 사람? 나보다 모든 조건이 나은 사람?

이야기를 하다보면 꽤 속물적인 이야기들이 이어지기 마련이다.

물론 이해한다. 안 중요할 수 없지.

그리고 조카의 일이니 더더욱 속물적인 이야기를 드러내놓고 할 수 있겠지.


근데 난.

이런 대화를 하다보면

이모들이 행복한 삶의 조건이 아니라 최소한 불행하지는 않을 수 있는 삶의 조건(그것도 남이 보기에)을 열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.


커플 매칭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의 프로그램에

집안,학력,학벌,직업,소득 등의 조건을 등록하면 DB에 등록되어 있는 회원 중

입력한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이 검색되어 출력된다고 하지.


이모들이 말하는 조건을 커플 매칭 프로그램에 입력하면

몇 명의 사람들이 검색되어 나올까?


하. 셀 수는 있을까? 너무 많은거 아냐? ㅎ

그리고 그들을 만나면 난 정말 행복해져?


난 단 하나의 사람.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 사람을 찾고 싶다.

최소한 불행하지는 않을 삶이 아니라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단 확신이 드는 삶을 선택하고 싶다. 고난 앞에 서로 두 손 맞잡고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고난이 대수일까?


함께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다거나, 깊은 대화가 가능하다거나,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다는 등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조건은 이모들의 이야기에 잘 노출되지 않는다.

난 그게 답답하다.


이모들이 눈에 보이는 조건이 아니라

눈에 보이지 않는 조건을 살피는 능력을 알려주면 좋을텐데.

원래 정말 중요한 건 눈에 안보이기 마련이니까 말이다.


물론 결혼을 경험한 이모들이 말하는 속물적인 조건이 어떻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?


먹고 사는 현실의 문제인데. 하지만 속물적인 조건보다 우선되는 조건이 있음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.


이런 나에게 이모는 한 마디 한다.

"늙은 쥐 말 들어서 손해 볼게 있는 줄 아니?"


난 이모에게 말한다.

"이모가 말하는 늙은 쥐말야. 행복한 삶을 살아본 쥐야?"


답 없는 이야기.

그냥 나를 믿어주시길

Posted by 최우정 Trackback 0 : Comment 2